본문 바로가기
추천시

불타는 배 / 詩 김백겸 (1953~)

by 전문MC 이재영 2007. 2. 21.

 


불타는 배

                

                               김백겸


선창가에 매어둔 밤배가 바다 위에서 불타버렸다
어부들의 생계가 한순간에 재가 되었다
붉은 몸이 검은 물 위에서
영산홍처럼 피어올랐다
인생도 불타는 몸
어머니 뱃속에서 불씨 하나씩을 가지고 나와
천천히 심지를 올리다가
큰 불길의 빛과 뜨거움을 먼 하늘로 보내고
무덤으로 돌아가 쉬는 화력발전소
전기가 사람의 영혼마다 백 촉 전등을 켜고
전기가 사람의 심장에 모터를 돌려 일하게 하고
전기가 사람의 눈마다 욕망으로 고여 세상을 불태운다
에집트인들은 불타지 않는 배 피라미드에 몸을 실어
먼 시간의 대양을 건너고자 했다
마야인들은 차라리 심장을 불태워 육체를 정화한 후
영혼을 태양의 배에 싣고자 했다
선창가에 매어둔 밤배가 바다 위에서 불타버렸다
설계하고 건조한 문명의 바벨탑이
한순간에 재가 되었다
붉은 몸이 검은 물 위에 빛과 뜨거움을 남기고 사라졌다





1953년 대전출생
충남대 영문과 졸업
충남대 경영학과 및 동 경영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기상예보>가 당선되어 등단
『시힘』 동인
시집 <비밀방>, <북소리>, <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 등
------------------------------------------


[감상]
선창가에 매어둔 배에 어느날 불이 붙었나 보다.

그 "불타오르는 배"를 보다가
문득 우리 인간의 몸도 결국은 "불타는 존재"로서 인식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즉, "불타는 배"와 "불타는 인간의 몸"을 하나로 묶어서 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 뱃속에서 불씨 하나씩을 가지고 나와

한 생을 활활 불타오르다가 결국에는 "욕망의 섬을 건너는 꽃불같은 존재" 아니던가.
그러한 우리 내면의 불씨는 영혼의 꽃등을 켜기도 하고,

때로는 부질없는 욕망의 화염을 피워대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소멸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한 윤회의 과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불타오르는 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넌지시 던지고 있다.
(양현근)


'추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홀한 거짓말 / 유안진  (0) 2007.02.27
나에게 기대올 때 / 고영민 (1968~)  (0) 2007.02.25
이식(移植) / 조말선  (0) 2007.02.23
오지않네, 모든 것들 / 함성호(1963~)  (0) 2007.02.20
운우지정 / 이선이  (0) 2007.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