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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移植) / 조말선

by 전문MC 이재영 2007. 2. 23.


이식(移植)

조말선


그날 아침, 무성한 아버지의 아를 떼어내 심었다

가랑이가 찢어진 겨드랑이가 찢어진 그날 아침,

단호한 아버지의 버를 떼어내 심었다

심장이 쪼개진 간격이 벌어진 그날 아침,

새 아버지를 경작하였다

새 침대를 마련하였다

새 관습을 주입하였다

찢어진 아버지 벌어진 아버지 불구의 아버지가 태어나리라

불구의 아버지께 사식을 대접하리라

그날 아침, 아버지는 불구가 되었다.

그날 아침, 아버지는 주저앉았다

야금야금 물을 주리라 간혹 식사시간을 잊으리라

회복이 빠른 아버지 낑낑대며 번식에 집착한 아버지

어느 날 아침 침대마다 무성할 아버지 똑같은 관습을 발육할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에요

뿌리없는 아버지

내가 경작한 아버지




경남 김해 출생.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및 <현대시학>으로 등단
2001년 <현대시 동인상> 수상
현재 부산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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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아버지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남성'은 참으로 불행하다.
해체되어가는 가장의 권위와 가부장적 문화, 그리고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간극 속에서 이 땅의 아버지들은 생존을 위하여
밤 낮으로 겨드랑이가 찢겨지고 있으며, 새롭게 경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불행한 아버지, 뿌리 없는 아버지,
이름마저 잊혀져 버린 아버지여
무성하게 잘 자라고 계시는지요
쓸쓸한 안부라도 전하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양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