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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

나에게 기대올 때 / 고영민 (1968~)

by 전문MC 이재영 2007. 2. 25.


나에게 기대올 때

고영민


하루의 끝을 향해 가는
이 늦은 시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다 보면
옆에 앉은 한 고단한 사람
졸면서 나에게 기댈 듯 다가오다가
다시 몸을 추스르고, 몸을 추스르고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올 때
되돌아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흔들림
수십 번 제 목이 꺾여야 하는
온몸이 와르르 무너져야 하는

잠든 네가 나에게 온전히 기대올 때
기대어 잠시 깊은 잠을 잘 때
끝을 향하는 오늘 이 하루의 시간,
내가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한 나무가 한 나무에 기대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어
나 아닌 것 거쳐
나인 것으로 가는, 이 덜컹거림

무너질 내가
너를 가만히 버텨줄 때,
순간, 옆구리가 담장처럼 결려올 때


-  고영민의 시집《악어》(실천문학) 중에서





1968년 충남 서산출생
중앙대학교 문창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악어> 2005년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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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늦은 밤,

귀가길의 지하철에서 누구나 한 두 번쯤은 겪었을 상황을
‘나’와 ‘타자’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묘사한 시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와르르 무너지기 위해서는

수십번 제 목이 꺾여야 하는 ‘망설임’의 징후와

완전한 ‘자기 부정’을 통한 상대방과의

동일성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내가 나 아닌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기댐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예각(銳角)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따뜻하게 하는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단한 사회가 암시하는 ‘덜컹거림’을 서로에 대한

‘기댐’을 통하여 완화하는 리듬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삶의 운율이자 사회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 모두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느닷없이 “옆구리가
담장처럼 결려오는” 그런 시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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