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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

흙 속의 풍경 / 詩 나희덕 (1966~)

by 전문MC 이재영 2007. 3. 6.


흙 속의 풍경

나희덕


미안합니다
무릉계에 가고 말았습니다
무릉 속의 폐허를,
사라진 이파리들을 보고 말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요
흙을 마악 뚫고 나온 눈동자가 나를 본 것은
겨울을 건너온 그 창끝에
나는 통증도 없이 눈멀었지요
그러나 미안합니다
봄에 갔던 길을 가을에 다시 가고 말았습니다
길의 그림자가, 그때는 잘 보이지 않던
흙 속의 풍경이 보였습니다
무디어진 시간 속에 깊이 처박힌 잎들은 말합니다
나를 밟고 가라, 밟고 가라고
내 눈은 깨어나 무거워진 잎들을 밟고 갑니다.
더이상 무겁지 않은 生, 차라리
다시 눈멀었더라면 하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신비한 현호색은 진 지 오래고
그 괴경(塊莖) 속에 숨기고 있는 毒까지 다 보였습니다
그걸 캐다가 옮겨 심지는 않을 겁니다
미안합니다
무릉계에 가더라도 편지하지 마십시오
그 빛나던 이파리들은 이미 제 것이 아닙니다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
1999년 제1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2005년 제17회 이산문학상 수상,((주)문학과지성사가 주관하는 , 시집『사라진 손바닥』)
그 외에 김달진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을 수상
「시힘」동인
2004년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사라진 손바닥>
산문집 <반 통의 물>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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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빛나던 사랑의 절정을 지나 와
어느 날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옛 시절의 풍경을 추억처럼 다시 거닐었습니다.
꽃피던 봄날에는 온 세상이 무릉계였지요.
꽃이 피고 지고,
농담처럼 세월이 흐르고,
그렇게 마음을 덜어낸 자리에는
사랑에 빠져 있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흙속의 풍경이며, 실한 알뿌리에 숨기고
있는 독까지 다 보고 말았습니다.
상처를 통하여 배운 소중한 가르침이겠지요
그 괴경(塊莖)을 옮겨 심으면 다시 새로운
사랑의 씨앗이 움트겠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이파리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추억은 그저 추억일 뿐입니다.  [양현근]

* 塊莖(괴경:덩어리 괴, 줄기 경) : 줄기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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