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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

서쪽이 없다 / 詩 문인수 (1945~)

by 전문MC 이재영 2007. 8. 17.



서쪽이 없다

 

 


                              詩   문인수

 



지금 저, 환장할 저녁노을 좀 보라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떴다,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내다봤다, 지척간에도 시차 때문인지,
없다, 15층짜리
만촌 보성아파트 107동
기역자 건물이 온통 가로막아 본연의 시뻘건 서쪽이 없다

시뻘겋게 녹슬었을 것이다
그 죄 사르지 않는 누구 뒷모습이 있겠느냐
눈물 훔쳐 물든 눈자위, 퉁퉁 부어오른 흉터 같은 것으로 기억하노니
아름다운 여분, 서쪽이 없다

말하자면 나는 이미 그대 사는 곳의 서쪽,
이 집에 이사 온지도 벌써 십년 넘었다, 인생은 자꾸
한 전망 묻혀버린 줄 모른다. 몰랐다. 다만
금세 어두워져, 저문 뒤엔 저물지도 않는다, 어여쁜 친구여
무엇이냐, 분노냐 슬픔이냐 그 속 뒤집어
널어놓고 바라볼 만한 서쪽이 없다.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옴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수상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뿔』,『홰치는 산』,『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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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환장하도록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본 적이 있는가
온통 시뻘건 빛으로 서녘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생의 여백을 묵묵히 바라본 적이 있는가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는 서녘하늘에서
삶의 여백으로서의 서쪽, 그리고
문득 지나와 버린 젊은 날의 서쪽을
바라보는 데까지 인식이 무한확장되고 있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달마는 왜 서쪽에서 왔던 것일까

 

[양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