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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

낡은 의자 / 詩 김기택 (1957~)

by 전문MC 이재영 2007. 8. 8.



낡은 의자



                                詩 김기택

 



묵묵히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늦은 저녁, 의자는 내게 늙은 잔등을 내민다.
나는 곤한 다리와 무거운 엉덩이를
털썩, 그 위에 주저앉힌다.
의자의 관절마다 나직한 비명이
삐걱거리며 새어나온다.
가는 다리에 근육과 심줄이 돋고
의자는 간신히 평온해진다.
여러 번 넘어졌지만
한 번도 누워본 적이 없는 의자여,
어쩌다 넘어지면,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허공에 다리를 쳐들고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는 의자여,
걸을 줄도 모르면서 너는
고집스럽게 네 발로 서고 싶어하는구나.
달릴 줄도 모르면서 너는
주인을 태우고 싶어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네 위에 앉는 것이 불안하다.
내 엉덩이 밑에서 떨고 있는 너의 등뼈가
몹시 힘겹게 느껴진다.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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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변절과 이기심이 가득한 세상에서
삐거덕거리는 관절과 늙은 잔등을
변함없이 내미는 진득한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고 갸륵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앞에
뒤뚱거리며 굼뜨기 일쑤이지만
철제의자며 값비산 가죽쇼파가
어디 너만 하랴
하지만, 고집과 우직함만이 전부는 아니란다.
든든한 네 발을 먼저 가져라
너의 등뼈를 단단하게 다져라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먼저 그 길을 가라.

 

[양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