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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쓴 미니 에세이 7편 / 유용선

by 전문MC 이재영 2007. 8. 4.
가포(架浦) 욕쟁이 할매 ::::::::::::::::::::

 

  

  가포라고 있어 순우리말로 하자면 시렁물말이지 마산시 안에 있으니 말뫼에 있는 시렁말이라 하면 참 듣기 좀 거시기 한 이름인데 아따 거기 입이 걸쭉한 욕쟁이 할멈이 한 분 계셔 아무한테나 육시럴 육시를 헐은 기본이고 지 손주한테 호랭이한테 잽혀 가 찢겨 죽일 놈도 예사이고 암튼 억수로 욕지거리 품세가 볼 만해 그런데 이 할매 웃음이 일품이야 여느 욕쟁이들처럼 찡그리는 게 아니지 가만 보면 그 할머니 쌍욕하는 까닭도 말이야 구차하게 찡그리고 사는 것들 혼찌검하는 게 대부분이더라고 한 번은 글쎄 다 큰 아들을 크다 못해 애도 하나 놓은 아들을 앞에 세워놓고 욕을 퍼붓는데 그러시더만 이 등신아 그만 찡그리라 고치 쪼그라든다 사내 자슥 불알에 땀 차면 암 데도 못 쓴다 듣는 사람들 다 웃다 뒤로 넘어졌지 아들도 기가 막힌 지 피식 웃고 일을 나가대 부엌 아궁이 들쑤시며 고치 쪼그라드느리라 불알에 땀 차면 암 데도 못 쓰느니라 혼잣말에 소매 깃으로 눈가를 씻으시는데 알게 뭐야 쪼그라든 솔가지 연기가 매운 건지 먼저 가신 영감 생각 하시는지 지금도 걱정거리 생기면 그 할멈 웃는 모습 떠올려 고치 쪼그라들지 말라고 불알에 땀 차지 말라고

 

 

  연애 센스 빵점 ::::::::::::::::::::

 

  벌써 오래 전 이야기지. 날 따라다니던 바람둥이 사내들. 내가 사내인데 왜 사내들이 날 따라다녔냐고? 허튼 생각 접고 글쎄 내 이야길 좀 들어 봐. 그건 내 연애 센스 때문이었어. 도무지 알아채질 못하는 거라. 그 여자가 한 말이 내가 좋아서 한 말인지 싫어서 한 말인지, 그 여자가 한 말이 선물을 받고 싶다는 건지 선물 필요 없고 나 하나면 된다는 건지, 그 여자가 한 말이 집에 일찍 들어가겠다는 건지 함께 밤을 지내고 싶다는 건지, 내 이 머리가 도무지 알아채질 못하는 거라. 여자들은 모두 천성이 시인 같아서 곧이곧대로 말하는 법이 없지. 에둘러 말하는 것도 모자라서 숫제 거꾸로 이야기를 하더군. 그땐 그걸 몰랐어. 아니, 아니, 솔직히 지금도 잘 몰라. 지쳐버린 여자들은 번번이 내 곁에 있던 바람둥이들을 따라가더군. 하이에나에게 먹이를 빼앗기는 어린 사자처럼 나의 사랑은 늘 그렇게 서툰 사냥이었어. 이젠 알겠지? 어째서 바람둥이 사내들이 날 따라다녔는지? 생각해 보면 참 쓸쓸하고 눈물 나는 기억이야. 

 

 

  퇴고(推敲) ::::::::::::::::::::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는 지적은 소설가 이태준이 그의 저술서 문장강화(文章講話)를 통해 한 말이다. 문장을 위한 문장은 피 없는 문장이다. 결코 문장 혼자만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먼저 아름답게 느낀 것이면, 그 마음만 여실히 나타내어보라,는 권유도 역시 그가 같은 책에서 한 말이다. 글 만드는 데만 끌려나오다가 '처음의 생각'과 '처음의 싱싱함'을 이지러뜨렸다면 그것은 도리어 실패이다,라고 갈파한 대목에 이르면 더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모두가 퇴고(推敲)의 장(章)에 들어 있는 말이다.

 

 

  심각(深刻) ::::::::::::::::::::

  

  똥 누면서 심각해지기 싫어. 똥을 마음에 새겨가며 눌 일 있나? 밥 먹으면서 심각해지기 싫어. 굶지 않는 거야 고맙지만 그래도 마음에 새겨가며 밥을 먹긴 싫어. 공부하면서 심각해지기 싫어. 그까짓 거야 머리에만 새기면 되지. 연애하면서 심각해지기 싫어. 심각한 얼굴로 연애하는 이들마다 끝이 우습더라고. 그래, 심각은 비밀스러울수록 좋았어. 결혼하여 살면서 심각해지기 싫어. 우리 부모의 결혼을 지킨 힘은 어머니의 명랑이지 아버지의 완고함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뒤부턴 말이야. 그래, 그건 심각이 아니라 완고함이었어. 이제 나는 알지, 세상엔 마음에 새길 만한 것들이 아주 많다는 걸. 심각은 구질구질하게 얼굴에 하는 게 아니라 가끔씩 들춰 내보이는 가슴에다 하는 것. 귀한 사람 앞에서만 꺼내 보이는 보물상자 같은 것.

 

 

  별다방 ::::::::::::::::::::

 

  별다방에선 이적지 모닝 커피를 파네. 한낮에 찾아와 모닝 커피를 달라는 덜 떨어진 것들도 드나드는 여기 별다방 모닝 커피 안 노른자는 생리혈에 뒤섞인 고름 같네. 예서 달거리를 하는 것은 커피와 달걀뿐. 미쓰 리는 생리가 끊긴 지 오래, 마담 정은 숫제 폐경이라네. 철가루 묻은 손이나 잉크를 묻힌 손이나 매양 탐하는 곳은 제일 여린 살갗. 니는 고향이 어디고? 쩌어기 남쪽이요. 별다방 한 쪽 구석 UN성냥갑은 육갑이네. 더는 불 붙지 못하는 화약을 고약처럼 뒤집어 쓴 성냥개비들. 낡은 오토바이는 미쓰 리를 매달고, 흐린 밤하늘은 노란 인공위성을 매달고 있네. 화창한 것은 무엇이고 여기엔 어울리지 않네. 모닝 커피에 담긴 노른자만이 아주 딱,이네.

 

 

  불만의 힘 ::::::::::::::::::::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설거지를 했네 아주 오랜만이네 어머니를 사랑하지 아들이니까 당연하지 그런데도 어머니한테서 받은 밥상엔 설거지 해 놓을 생각 좀처럼 하지 않네 어머니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가운데에서도 아주 더 약한 여자이건만 아들은 밥 먹고 밥상 물리면 그만이네 그렇지 어머니와 나 사이엔 불만의 힘이 없네 그게 다르네 아내와 혹은 동거녀와 혹은 애인과 혹은 여자 동료와는 그게 다르네 어머니에겐 없는 불만의 힘이 거기엔 만유인력처럼 버티고 있네 그게 다르네 설거지를 하다 문득 끊을 수 있는 힘과 끊을 수 없는 힘을 생각하네 허나 이것도 저것도 끊고 싶지 않네

 

 

  오해 받는 작가들 ::::::::::::::::::::

 

  길동이는 가난했다. 인수도 가난했다. 주영이도 가난했다. 미숙이도 가난했다. 길동이와 인수와 주영이와 미숙이는 작가다. 오늘 두현이란 사람을 처음 만났다. 주변 사람 말이 그는 작가란다. 그러니까 두현이도 가난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귀납추리의 모순이다. 하지만 두현이는 전혀 가난하지 않다. 그러니까 두현이는 엉터리 작가일 것이다. 이 번엔 연역추리의 모순이다. 아아, 변해가는 세상이여. 작가도 투잡을 할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이여. 사회주의자였던 길동이는 자본주의를 위한 정치를 하고 노조위원이었던 인수는 중소기업을 창업하고 샌님 같은 주영이는 사사(社史)를 쓰고 애교가 만점인 미숙이는 남편이 엄청난 부자고 부지런한 두현이는 부모에게 건물을 물려받은 임대사업자라지. 살기 좋은 이 세상에서, 작가들이여, 투잡을 하자. 사지 멀쩡한 사람이 글만 쓰며 산다니 그게 말이 되나? 할 수 있다면 쓰리잡이라도 하자. 상상력으로 세상을 훔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