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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

귀가 / 詩 도종환 (1954~)

by 전문MC 이재영 2007. 6. 12.


귀가

도종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1984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접시꽃 당신>, <접시꽃 당신2>,<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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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사는 일이 왜 그렇고 바쁘고 정신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많이 바쁘시지요’로 시작하는 게 우리들의 인사법이 된 지 오래입니다.

햇볕 한 줌 제대로 들지 않는 사무실에서 밤 늦도록 시달리다가

전철이며 버스에 지친 몸을 기대며 돌아오는 날이면,

늦은 골목길을 지키고 서 있는 희미한 가로등이 왜 그렇게 서글프게 느껴지는 건지요.

이 모든 것이 사는 일이라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거라고 자위하며

더욱 더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많이 하고,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보지만‘

그럴수록 우리들 몸에서는 사람냄새가 아닌 외롭고 쓸쓸한 냄새가 배어나곤 했지요.

바쁘다는 핑계로 오늘 못 다한 말은,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그리고 오늘 못다한 일은 어쩌면 내일도 하지 못할 겁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바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일상에 쫒겨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말,

꼭 챙겨야 할 소중한 가치를 무심코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쯤 뒤돌아 볼 일입니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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