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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뒤안길

[문단의 뒤안길-1970년대 2] 한국문인협회의 주도권 쟁탈전

by 전문MC 이재영 2013. 4. 4.

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2> 한국문인협회의 주도권 쟁탈전

정규웅 | 제101호 | 20090215 입력
한국문인협회 총회에서의 미당 서정주(왼쪽)와 조연현.
지지세력의 두께로 볼 때 1971년 1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뽑는 총회에서 김동리 이사장의 상대로 나설 사람은 조연현일 것이라고 문인들은 누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동리의 카운터파트로 나선 사람은 뜻밖에도 조연현이 아닌 서정주였다. 서정주와 조연현 사이의 밀약의 결과였다. 서정주로서는 김동리에 대한 서운함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조연현으로서는 여러모로 선배가 되는 서정주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줌으로써 다음 선거(73년)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서정주의 지지 세력도 만만치 않은 데다 조연현의 도움, 문덕수·이봉래 등 이른바 문단의 ‘중간 보스’들의 가세로 서정주 ‘캠프’는 총회 전부터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김동리의 압도적 승리, 서정주의 무참한 패배였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조연현 등이 공개적으로 서정주 지지를 선언했음에도 그를 추종하는 문인들이 그의 뜻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김동리의 지지 세력은 숫자는 적었지만 똘똘 뭉쳤고, 박목월의 지지 세력까지 가세해 표의 이탈을 막는 데 주력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김동리가 2년 임기의 이사장 직에 절반밖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개인적 인기에서 서정주에게 앞섰다는 점이 선거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됐다.

그런데 71년 총회의 선거 결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73년 총회에서 ‘조연현의 시대’를 열게 하고 이어 70년대 막바지까지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다. 김동리와 조연현이 맞붙은 73년의 문인협회 이사장 선거를 문단에서는 ‘김동리-조연현의 대회전’이라 부른다.

1월 하순께 서울 서소문에 있던 명지대학 15층 강당에서 열린 문인협회 정기총회는 말 그대로 선거 열풍의 도가니였다. 총회가 열리기 한 시간 전부터 문인들이 몰려들었다. ‘성북동 비둘기’의 원로시인 김광섭은 휠체어를 타고 입장해 장내를 잠시 숙연케 하기도 했다. 그는 65년 4월 동대문야구장에서 야구경기를 관람하던 중 고혈압으로 쓰러져 8년째 투병 중이었다.

700명 가까운 문인이 운집한 가운데 총회가 시작됐다. 장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단순한 표의 성향 분석으로는 서정주·문덕수·이봉래 등의 계파 지지, 그리고 김윤성·이동주·이형기·이인석 등 중진 중견 문인들의 개별 지지를 받은 조연현이 다소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나이나 문단 경력, 그리고 문학적 지명도에서 조연현은 김동리에게 한참 뒤져 있었고, 무엇보다 김동리가 3년간 문인협회를 별 탈 없이 원만하게 이끌어 왔다는 점이 조연현에게는 걸림돌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한 표 한 표 개표될 때마다 장내에는 탄성과 탄식이 교차됐다. 엎치락뒤치락이 되풀이되는,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접전이었다. 결과는 321표 대 312표, 김동리의 9표 차 승리였다. 하지만 문협 정관에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자가 없으면 2차 투표에 들어간다는 조항이 있으므로 김동리가 득표에서 앞서기는 했으되 당선한 것은 아니었다.

고심하던 조연현은 측근 몇 사람을 불러 사퇴의 뜻을 전했다. 측근들은 펄쩍 뛰었다. 2차 투표로 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설득했다. 조연현은 가타부타 말 없이 눈을 감고 듣기만 했다. 그들은 1차 투표에서 패배한 원인이 서정주의 미온적인 태도, 그에 따른 서정주계 문인들의 이탈에 있다고 보고 휴회시간을 이용해 물밑작업에 나섰다. 서정주계 문인들은 서정주의 눈치를 살피기만 했다. 마침내 서정주가 입을 떼었다. “조연현 후보를 지지해 주시오.”

서정주의 그 한마디 말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2차 투표 결과 조연현은 20여 표 차로 김동리를 눌렀다. 표의 숫자대로라면 1차 투표에서 조연현에게 등을 돌렸던 서정주계 문인들이 2차 투표에서 돌아선 것으로 해석됐다.

73년은 김동리가 회갑을 맞는 해였다. 문협 이사장직을 내놓게 된 김동리는 이문구 등 측근 문인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새 문예지를 창간키로 했다. 명분은 회갑기념사업의 일환이었다. 월간 문예지 『한국문학』은 김동리를 발행인으로, 이문구를 편집장으로 그해 10월 창간됐다.

이문구는 편집사원으로 여류소설가 서영은과 시인 김년균을 채용했다. 김동리의 부인 손소희가 세상을 떠난 뒤 부부가 된 김동리와 서영은의 인연은 그때 시작된 것으로 문단에서는 보고 있다. 만 서른의 서영은은 김동리보다 꼭 서른 살이 아래였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