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단의 뒤안길

[문단의 뒤안길-1970년대 1] 김동리와 서정주

by 전문MC 이재영 2013. 4. 4.

 

문단의 뒤안길 - 1970년대<1>김동리와 서정주

정규웅 문학평론가 | 제100호 | 20090208 입력
고희 기념 문학의 밤 행사 무대에 오른 김동리
이 땅에서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시대는 과연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은 유신정치 체제하에서의 혹독했던 체험들을 떠올릴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경제발전의 초석이 다져져 간 과정들을 차근차근 곱씹어 볼 것이다. 그 70년대를 여는, 70년에 발생한 두 개의 사건은 그와 같은 70년대의 복잡한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하나는 그해 3월 서울 강변로에서 발생한 ‘정인숙 여인 피살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11월 서울 청계천에서 발생한 ‘전태일 분신 자살 사건’이다.

그 같은 양면성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학 분야가 예외일 수 없었다. 70년대의 개막과 함께 김지하의 담시 ‘오적’이 ‘사상계’에 발표되고, 뒷날 이른바 ‘70년대 작가’로 지칭되는 황석영·김주영·조해일·조선작 등이 때를 같이 하여 문단에 얼굴을 내민 것은 70년대의 한국문학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것인가를 예감케 하는 전주곡이었다. 곧 민족문학·민중문학 등으로 세분화되는 반체제 문학의 본격적 자리매김, 그리고 그와는 상반되게 문학이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드는 문학의 대중화 현상이다.

한국 문단 전체로 보면 변화의 조짐은 훨씬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문단이 줄곧 정권의 시녀 노릇만 해 온 것은 문단이 원로 세대에 의해 주도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은연중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문인협회는 70년 1월 정기총회를 열어 칠순에 접어든 박종화 이사장을 퇴진시키고 김동리를 새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박종화는 64년 군사정부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해 있던 문화예술단체를 하나로 통합해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예총)를 창립하게 한 이후 문인협회를 일사불란하게 이끌어 온 명실상부한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다. 어떤 문인도 그에 맞서려는 이가 없어 그의 이사장직은 종신직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그의 뒤를 잇는 세대이며 문단의 실력자인 김동리·서정주·조연현 등 50대 문인들은 유형·무형의 압력을 가해 박종화 이사장의 퇴진을 종용했다. 명분은 ‘이제 고령에 접어드셔서 문인협회를 이끌어 가기 힘드실 터이니 그만 쉬시라’는 것이었다. 박종화를 보필해 온 많은 문인이 ‘무례하다’며 맞섰으나 박종화는 고심 끝에 용퇴키로 하고 후임 이사장에 김동리를 지명, 자신의 잔여 임기 1년을 채우도록 했다. 서정주·조연현의 불만이 없을 수 없었으나 나이로나 문단 경력으로나 김동리가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위였기에 이듬해 열릴 차기 총회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단에서 김동리의 독주 체제는 꽤 오래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문학적 업적으로나 문단적 위치로서 그에 필적할 만한 문인이 별로 없는 데다가 박종화의 후광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종화의 퇴진은 오히려 문단을 정치판과 빼닮은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치닫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박종화를 퇴진시키는 데는 세 사람이 힘을 합쳤지만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 출신 문인들이 주축을 이룬 김동리 지지 세력에 비해 동국대 출신 문인들과 ‘현대문학’ 출신 문인들이 주축을 이룬 서정주와 조연현 지지 세력이 훨씬 비대해져 있었으므로 두 사람과 그 지지 세력들이 다음 번 이사장 자리를 노린 것은 당연했다. 이들 세 사람이 해방 후 문단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뜻을 모아 청년문학가협회를 창설한 문학적·문단적 ‘동지’였음을 감안하면 70년대 문단 정치의 비정함을 새삼 실감케 된다.

특히 김동리와 서정주는 60년대 중반 이후 은밀하게 독자적 세력을 확장해 가는 조연현을 견제하면서 매사에 협동 내지 협조하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6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겨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당시 수상자 후보는 서정주와 박목월로 압축됐는데 수상자 선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김동리가 미온적 태도를 보여 박목월로 결정됐다는 것이었다.

차기 이사장 자리를 노리는 서정주계와 조연현계의 물밑 작업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으나 김동리가 새 이사장으로 문협을 이끈 1년 동안 세종로 예총회관 내의 한국문인협회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문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김동리가 기관지 ‘월간문학’의 편집장으로 임명한 이문구의 공이었다. 김동리와 이문구는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의 사제 간이었으나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평생 부자 관계 못지않은 끈끈한 유대를 유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