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얘기
이진명(1955~ )
자빠진 빗자루를 바로 세우니
마당이 쓸고 싶어졌습니다
마당을 쓸고 나니
물을 뿌리고 싶어졌습니다.
물을 뿌리고 나니
마루턱에 앉아 슬리퍼 바닥에 박힌 돌을 빼내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제 곳이 아닌 곳에 자빠져 있는 마음을 일으키면
바로 세우면
그러나 마음 이미 너무 비뚤어져 화만 낼지도
싸움꾼처럼 덤비기만 할지도
<시평>
시인 둘이 만나 시시하게 산다는 이진명 시인을 처음 만난 건 20여 년 전 여름, 광화문 교보문고 앞 도로변이었다.
연신 이마의 땀을 씻어내면서도 만삭인 배를 자랑스럽고 여유롭게 추스르던 모습,
차분하지만 환한 목소리로 안면 가득 웃음을 머금던 그에게서 여성성이란 또는 모성성이란 저런 것이리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의 시 역시 그런 따뜻하고 정갈한 마음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한다.
자빠진 빗자루를 바로 세우고, 마당을 쓸고, 물을 뿌리고 그런 연후에 슬리퍼 바닥에 박힌 돌을 빼내는 일까지 세심하게 놓치지 않는 쉼 없는 마음 씀씀이를 보라.
제 곳이 아닌 곳에 자빠져 있는 마음들을 일으키고 바로 세우는 것이 시인이다.
그것이 이미 너무 삐뚤어져 화만 내고 싸움꾼처럼 덤비기만 할지라도 그럴수록 다가서서 어루만지고 일으켜 바로 세우는.
그늘지고 쓸쓸한 곳을 조용히 쓰다듬을 줄 아는 이진명 시인과 어쩌다 통화를 하고 나면 마치 용서라는 말을 들은 듯한 것은 왜일까.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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