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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낭송시

새벽녘의 짧은 시 / 詩 고이케 마사요 / 번역 한성례 / 낭송 이재영

by 전문MC 이재영 2008. 1. 10.

새벽녘의 짧은 시 
            詩 고이케 마사요 / 번역 한성례 / 낭송 이재영
긴 여행 도중 
미국 산타페의 욕실에서 
새벽녘 
오래오래 조용히 방뇨를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는 
나와 이 소리밖에 없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 소리라 해도 내 자신이 내고 있던 거였지만 
그것은 기묘하게도 외부에서 들려와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노파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그렇지만 그것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시간 
지금 여기 내가 없어요, 
살아 있지 않아요, 
이렇게까지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소리가 그치고 
급속히 차가워져가는 실내에서 
문득 조성된 무음의 덩어리 
이것이 나, 나인가 
보이지 않는 원형 모양으로 남은 생의 온도 
너는 있었던가 
거기에 있었던가 
나는 있었다 
살아 있었다 
질문하는 소리가 닿기도 훨씬 전에.

着語
일본 여성시인의 작품이다.
방뇨가 시가 된 이 경우는 오금이 저리는 바가 있다.
심원에 닿은 기묘함.
그 허전함은 그의 시어처럼 ‘오래오래 조용히’ 마음을 움직인다.
혼자 변기에 앉아 방뇨하는 새벽녘은 존재와 부재를 공유하게 한다.
시인은 긴 여행 중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허전한 자유를 맛보았다고 하였다.
만물이 잠든 시간,
어쩜 그 방뇨의 짧은 인식만이 여행에서 남은 유일한 의미일지 모른다.
한성례 시인이 번역했다.
<고형렬ㆍ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