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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

들소를 추억하다 / 詩 조동범 (1970~)

by 전문MC 이재영 2007. 9. 28.


들소를 추억하다



                                 詩 조동범

 



골목길 귀퉁이에
자동차 한 대 버려져 있다
앙상하게 바람을 맞고 있는 자동차는
아직도 보아야 할 무엇이 남아 있는지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하고
골목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초식동물처럼
뼈대만 앙상한 자동차
자동차는 무리지어 이동하는
초원의 들소떼와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한 마리
늙은 들소를 추억하고 있다
하염없이 초원의 저편을 바라보는 들소는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들소의 눈은 죽음과 맞닥뜨리면서도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무리의 흔적을 좇는다
골목길 귀퉁이에 버려진 낡은 자동차는
초원의 늙은 들소처럼 골목길 너머,
무수히 질주하는 속도의 흔적을 좇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골목길
눈 감지 못한 죽음이 애처롭게
그 너머를 바라보는,
고요한 속도의 뒤편




1970년 경기도 안양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2년 [문학동네]로 등단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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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시인은 골목길에 오랫동안 주차되어 뼈대만 앙상한
고물자동차를 초원의 ‘늙은 들소’로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늙은 들소’에서 소외받고 외로운 현대인의
모습에까지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한 시절 세상 위를 질주하다가 뒷골목에 버려진 자동차가,
‘눈 감지 못한 죽음’이 되어 지평선 너머 세월의 흔적을
애처롭게 뒤쫒고 있습니다.
무리에서 이탈한 힘없고 약한 초원 위의 ‘늙은 들소’처럼
무한경쟁에서 밀려난 ‘고요한 속도의 뒤편’을
말없이 추억하고 있습니다.  
추억의 어디쯤에 우리들의 뒷모습이 아슴아슴 보입니다.

[양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