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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 대한 반성문 / 詩 복효근 (1962~)

전문MC 이재영 2007. 9. 5. 11:49


새에 대한 반성문



                                        詩 복효근

 



춥고 쓸쓸함이 몽당빗자루 같은 날
운암댐 소롯길에 서서
날개소리 가득히 내리는 청둥오리떼 본다
혼자 보기는 아슴찬히 미안하여
그리운 그리운 이 그리며 본다
우리가 춥다고 버리고 싶은 세상에
내가 침뱉고 오줌 내갈긴
그것도 살얼음 깔려드는 수면 위에
머언 먼 순은의 눈나라에서나 배웠음직한 몸짓이랑
카랑카랑 별빛 속에서 익혔음직한 목소리들을 풀어놓는
별, 별, 새, 새, 들, 을, 본다
물 속에 살며 물에 젖지 않는
얼음과 더불어 살며 얼지 않는 저 어린 날개들이
건너왔을 바다와 눈보라를 생각하며
비상을 위해 뼈 속까지 비워둔 고행과
한 점 기름기마저 깃털로 바꾼 새들의 가난을 생각하는데
물가의 진창에도 푹푹 빠지는
아, 나는 얼마나 무거운 것이냐
내 관절통은 또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이냐
그리운 이여,
네 가슴에 못 박혀 삭고 싶은 속된 내 그리움은 또 얼마나 얕은 것이냐
새 한 무리는 또
초승달에 결승문자 몇 개 그리며 가뭇없는
더 먼 길 떠난다 이 밤사
나는 옷을 더 벗어야겠구나
저 운암의 겨울새들의 행로를 보아버린 죄로
이 밤으로 돌아가
더 추워야겠다 나는
더 가난해져야겠다

-시집 『새에 대한 반성문』 (시와시학사, 2000) 중에서

 






1962년 전북 남원출생
1991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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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사는 일이란 얼마나 쓸쓸한 일일까요
아니 얼마나 더 쓸쓸해져야만 혼자 있어도
가슴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요
뒷강물이 앞강물을 밀어 내며 조용조용 흘러가는
운암댐 소롯길에서 청둥오리떼의 군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아니 너무 쓸쓸하도록 절절하여
그리운 이, 그리운 이가 가슴에 걸립니다.
인간들이 춥다고 버려둔 세상,  
쩡쩡 언 강물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풀어놓는
뜨거움이며, 살얼음 깔리는 강물 위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비우는 고단함이며,
가진 것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깃털 밖에 없지만
욕심 한 점 없는 순수가 날개소리 가득하도록 내려앉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 한 무리는 그렇게 부리나케 달려온 길을
‘초승달에 결승문자 몇 개 그리며’
밤 길을 도와 또 기약없는 먼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쉬이 화를 내고,
욕심의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요.
채우고도 늘 모자라서 배고파하는 허기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큰 호사일까요.
먼길 떠나는 겨울 철새 무리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양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