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MC 이재영
2007. 8. 22. 12:24
최초의 사람
詩 권현형
챙이 커다란 청모자를 쓴 아이가 제 동화책 속에서 걸어나와 검정 에나멜 구두로 땅을 두드린다 최초의 사람인 듯 최초의 걸음인 듯 갸우뚱 갸우뚱 질문을 던지며 걸어다니다 집을 나와서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봄의 부랑자들, 길바닥에 떨어져 누운 꽃점들을 두고 차마 지나치지 못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바르비종 마을의 여인처럼 가만 무릎을 꿇는다 이삭 줍듯 경건하게 주워올려 본래의 둥지 나무 가까이에 도로 놓아준다 방생하듯 봄날의 바다에 꽃의 흰 꼬리를 풀어 놓아준다. 꽃 줍는 아가야, 환한 백낮에 길 잃은 한 점 한 점을 무슨 수로 네가 다 거둘 것이냐 몸져 누운 세상의 아픈 뼈들을 무슨 수로 일으켜 세울 것이냐 한번 떨어져 나온 자리로는 다시 돌아갈 길 없다 네가 옮긴 첫발자국이 그토록 무겁고 서러운 질문이었음을 기억하거라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시집으로 <중독성 슬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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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동화책 속의 아이가 청모자를 쓰고 나와 몇 마디 외칩니다. 최초의 사람인 듯, 최초의 질문인 듯 갸우뚱거리며 다소곳한 물음표를 던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로 읽히기도 하고 동화속의 아이, 그 때묻지 않은 순수로도 이해됩니다.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다의성을 함축한 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부랑자의 길을 들어선 인류여, 아픔이여, 밀레의 바르비종 마을, 무릎꿇은 여인의 그 경건한 몸짓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몸져 누운 세상의 아픈 뼈들이며 물러진 몸짓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요. 진화와 창조라는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첫 발자국이 그토록 무겁고 서러운 질문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오래 기억해야 합니다.
[양현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