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시
지우개 / 詩 유용선
전문MC 이재영
2007. 8. 21. 16:14
지우개
詩 유용선
방금, 늙은 개 한 마리를 지웠다.
오후 두 시엔 고양이 두 마리를 지우기로
예약이 되어 있다.
나는 흰옷을 입은 저승사자.
나는 시체에 피와 상처를 내지 않는 도살자.
나는 사랑의 끝에 안락을 선사하는 참된 위로자.
나는 자기보다 덩지가 큰
사자와 곰, 악어도 지울 수 있는 절정고수.
방금, 이태 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째서 기억은 애완이 되지 못하는 걸까.
내 수술대 위에 나를 올려 놓을 수 있다면.
나처럼 단호하게,
나처럼 능숙하게,
누군가 내 기억을 쓰윽 지워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