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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국도 / 詩 김왕도 (1957~)
전문MC 이재영
2007. 7. 24. 12:26
푸른 국도
詩 김왕노
길가의 집 앞에 기다림이 쪼그려 앉아 하염없는데 끊길 듯 끊길 듯 필사적으로 뻗어간 이 길 길을 오가며 보던 차창에 비치던 옛 얼굴을 어디서 미라같이 쪼그라들고 있는지 길은 블랙홀로 자꾸 나를 빨아들이고 나는 소실점 하나로 길 위에 남았지만 그래도 사고다발지역을 지나면서 이 곳에 이르러서 불행해진 사람을 위해 성호를 그으면 폐가가 있는 길가의 쓸쓸한 풍경이 담뱃불 같이 잠시 환해진다 옛날 푸른 등같이 사과가 매달렸던 길가의 과수원이 사라졌는데 탱자 꽃 하얀 관사의 오후도 사라졌는데 아직도 길 위에 자욱한 사라지는 것들의 발소리 그래도 사라지는 것들을 배려해 누가 켜준 저 가물거리는 등불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밤 몇 눈금의 목숨을 길 위에 써버리더라도 안개 피는 새벽쯤이면 이 국도 끝 그리운 집의 문을 소낙비 같이 세차게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1957년 포항출생 1988년 공주교대 졸업 1992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1995년 6인시집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2002년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2003년 한국해양문학대상 글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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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어디론가 끝간데 없이 필사적으로 이어진 국도를 구불구불 따라서 달리다보면 오랜 기다림과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다려도 종내 기다려도 오지 않는 소식들이며, 어디론가 나를 빨아 들이고 있는 기억의 소실점, 나이들수록 쓸쓸해지는 그 풍경들을 뒤로 하고 조용히 엑셀레이터를 밟습니다. 탱자꽃 피던 시절도 하얀 추억 속으로 지고, 남아 있는 것들 마저 적막하기 그지 없는데, 아직도 길 위에서는 사라지는 것들만 분분합니다. 오늘도 가물거리는 등불을 배경삼아 안개 자욱한 푸른 국도를 지나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이 국도의 끝머리 어디쯤에서 문득, 그리운 이름을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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