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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 詩 한혜영
전문MC 이재영
2007. 7. 19. 10:27
가로등 한혜영 내가 이사 오기 훨씬 전부터 저기 서성댔을 저 남자를 꼭 빼어 닮은 아저씨를 본 적 있다 바지 구겨질까 전전긍긍 쪼그리는 법도 없이 벌을 서던 그 아저씨 흰 바지에 칼주름 빳빳하게 세워 입고 밤만 되면 은하수처럼 환하게 깨어나서 지루박 장단으로 가뿐하게 산동네를 내려갔던 내려가서는 세월 캄캄해지도록 올라올 줄 몰랐던 그 아저씨 청춘 다 구겨졌어도 바지주름만큼은 시퍼렇게 날 세운 채 돌아와서 서성거리던, 늙고 깡말랐던 전봇대를 본 적이 있다 꼭꼭 닫혀버린 본처 마음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그 아저씨 물음표로 무겁게 떨어졌던 고개 아래 불콰하게 익어가던 염치없음을 본 적 있다 저기 저 남자처럼 비까지 추적추적 맞으면서 1989년 <아동문학연구> 동시조 당선 1994년 <현대시학> 시 추천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퓨즈가 나간 숲' 당선 1998년 <계몽문학상> '팽이꽃' 장편동화 당선 2004년 <시조월드 문학대상 ><한국 아동문학 창작상> 수상 시조집 <숲이 되고 강이 되어>, 장편소설 <된장 끓이는 여자>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장편동화 <팽이꽃>, <뉴욕으로 가는 기차> <비밀의 계단>, <붉은 하늘>, <날마다 택시 타는 아이> 등 다수 ===================================== [감상] 그 남자, 춤바람에 빠져서 본처도 내팽개치고 밤만 되면 밤마실을 나서던 그 남자, 사내 구실도 못하던 그 남자, 그 남자, 세월이 캄캄하도록 한 시절을 떠돌다 와서는 바지단이 카랑카랑하도록 낡은 자존심을 곧추세우던 그 남자, 쉽게 열리지 않는 대문 아래에서 지금은 낡은 전봇대처럼 비를 맞고 서서 쓸쓸히 늙어가는 그 남자, 저 가로등 같은, [양현근] |